보혈은 오늘 나를 살게 한다.
그것은 자기 연민을 벗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진정 보혈의 무게를 알고, 주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게 된 때는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을 경험하고,
나름대로의 작업이랄지 사역을 하게 된 때를 한참 지나서이다.
어느 날 버스안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만일 내가 고쳐야 하는, 알아야 하는 죄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하나님는 내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 날 아침 응답하셨다.
교회 앞에서 누군가가 내게 한 가지 죄를 이야기 해주었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철저한 죄인인지, 나의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온전한 것 하나 없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아침부터 밤까지 온 거리를 쏘다니며 눈물을 쏟았다.
정말 끊임없이 눈물을 쏟았고 부끄러웠다.
내가 정말 자주 불렀던 찬양.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이 찬양을 정말 내 입술로 부를 수가 없어서.. 그렇게 또 울었다.
내가 그렇게 찬양했지만 나의 실상을 보게 된 것이다.
죄를 지으며 살아왔기에 자신을 막연히 죄인이라 생각했고,
또한 동시에 그 분의 봉사자라 생각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생각했으며
찬양의 가사처럼 너무나 친구 같은 주님의 기쁨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을 찾을 때, 갖게 되는 생각은 대충 이랬다.
'미물과 같은 나와 함께 일하시고 거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와 함께 거닐어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교제가 은혜였으며 감사했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관계를 가능케 한, 보다 근본적인 은혜, 그 밑작업이자 완성이 바로
십자가사건이었으며, 그 곳에서 흘리신 보혈이었던 것이다.
그 때서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은혜를 만날 수 있었다.
죄 때문이 아니라 죄에 대한 수치감 때문이라도 죽어야만 용서될 수 있는 내게
나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할 죄를 덮고 나를 의인 되게 한 값이 바로 보혈이었다
그 보혈이 나를 살게 하셨다.
그 때 내게 믿음이 필요했다.
주홍같이 붉은 내가 어떻게 흰눈같이 희어질 수 있는가
자기 연민에서 물론 건지시지만 보혈이 그저 감기약 정도의 처방이 아니다.
그 보혈은 어제와 이어지는 연장선상에서의 내 삶을 전혀 다른 삶으로 공간이동 시켰다.
그것을 믿을 수 있는가?
믿음은 그렇게 사는 것이다.
하루종일 철저히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한 사람이 한 순간에 의인이 되버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인 것을 깨닫았다.
그래서 성찬식이면 '나를 기념하라' 하신 그 포도주 잔을 마시며 눈물 흘리게 되는 것이다.
나를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친구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에 '나를 살게 하셨습니다. '
그저 가난했던 내 삶이 풍요로워 지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살게 된 삶을 보게 된 것이다.
확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때 어린양의 피가 보여준 구원의 사건처럼
그 보혈은 내 개인의 삶을 구속하신 것 처럼 인류의 죄와 사망의 세력을 궤멸 시키셨다.
그 보혈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
그 피가 이룬 사건은 실로 어마어마 하다.
유대인에게 구원이 있었을 때 사실 나를 비롯한 우리 나라는 이방인(그 중에서도 땅끝이었다.)이었다.
그 피로 인해 전에 멀리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의 화평이 돼서서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 (엡 2:13~)
이 이야기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새 사람으로 지어 화평케 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데 까지,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이어질 것이다.
- 명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제 곧 학기가 시작합니다.
분주할 것 같아요.
그래서 홈페이지에 쓰던 일기를 티스토리에 옮겨 나누는 시간을 줄일까 합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작업의 영역을 나누어서 다시 티스토리에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안하세요. 샬롬
홈페이지
http://lovenphoto.com
버드나무,
지금 사이트는 없어졌지만
버드나무가 생겨난 지 벌써 햇수로 8년이 되었다.
처음 우현 형과 시작하고
세월지 지나가며 얼굴들은 바뀌었지만
그 곳에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
세상을 살아가는 무게를 몰랐는 덕분에
하나님에 대해 무작정 시험해 보며
말씀에 발 딪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마치 거친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기듯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무게와 사람의 가치. 작업에 대한 열중..
그러다가 신앙의 깊이가 더해가며 성령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성령님을 처음 알고 만나게 된 것을 생각하면 유치하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한 나는 성령님을 만나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집 근처에 문이 열려 있는 교회를 무작정 찾아갔다.
그것도 밤 12시쯤에 혼자서 성령에 관한 찬송을 박수를 치며 불렀고, 기도했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이 같은 절박한 쇼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말씀을 읽게 되며 그 말씀이 내게 다가와
나는 자연스레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생각하고 익히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이스라엘의 의미를 생각하며
이전에 멀리 있었던 이방인, 바로 내가 구원 받은 사실, 그 은혜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중보하며 기도하게 되었다. 또한 열방의 회복을 꿈꾸게 되었다.
그 버드나무가 다시 시작될 것 같다.
처음, 종교색을 빼고 시작한 버드나무가 지금 경향성이 짙게 드러나
각 사람과 열방의 회복을 꿈꾸며 다시 시작될 것 같다.
막연하지만, 그 시작을 연구하고, 새로운 컨텐츠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학기가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될 부하를 어떻게 조절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속회 모임 중에
아내는 오늘 있었던 성찬식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교회는 매 달의 첫 주일에 성찬식을 갖는데
그 성찬식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를 이야기한 것이다.
몇 주전, 나와 함께 말씀을 하나 하나 찾아 읽으며
예수님의 피가 얼마나 값진지를 생각해 보던 시간이 있었다.
그 피가 나를 살리셨고, 나를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성찬식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아내의 성찬식 이야기를 옆에서 들으며 나 또한 감격스러웠다.
그러면서 내가 성찬식 때 포도주 잔을 나누며 언제 가장 눈물 흘렸을까를 떠올려 보았다.
아. 내가 죄인이구나.
내 안에 피할 수 없는 죄들을 발견했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내가 의인이 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감격스러워 눈물을 펑펑 쏟았던 것 같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르며
얼마전 말씀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나누었던 시간이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나는 그 말씀들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이 질문을 청년 시절, 만나던 사람들이 내게 많이 물어봤다.
특히 새가족부를 맡고 있을 때 새신자들이 자주 질문했다.
자신도 내가 만난 것처럼 하나님을 친밀하게 만나기를 원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한 사실은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
내가 하나님을 말씀으로 알아가기 시작한 지 채 이년도 되지 않은 때라는 것이다.
(그 전에도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긴 했지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때를 말한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분과 대화하고 질문하고, 성경에 밑줄 긋고
별표 치고, 성경의 말씀마다 '그래요?','정말인가요?','감사해요.'
이런 글들을 적어 놓았던. 그 이 년 사이에 하나님은 나를 쉼없이 만나주었다.
그러니 하나님 만나는 것에 대해 어렵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을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론에 따라 운용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굿판이나 점집에서 만나는 신과 다를바 없지 않은가?
하나님과의 만남은 관계다.
하나님이 이웃집 아저씨 정도라도 온갖 애를 써서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감사한 것은 그 분이 내 아빠 라는 것이다.
아빠 아버지. 내가 전심을 다해 그 분을 알아가길 원하는 것 이상으로
아빠는 나를 전심을 다해 사랑하셨으며 사랑하시며, 사랑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내가 그 분을 향해 믿음을 잃지 않을 크다란 근거가 되어준다.





Recent comment